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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8:18-20 본문

기독교 신앙/BEB(성경해석배틀)

마 18:18-20

standwally 2014. 9. 29. 03:19
  • 성경 본문 : 마태복음 18장 18~20절


  • 성경적인 옳바른 해석


  사실 문맥의 흐름상 18절부터 20절을 이해하려면, 15절부터 17절의 내용까지 함께 병행해서 읽어야 합니다.

  15절부터 17절은 간략히 말하자면, '믿음의 형제가 범죄할 경우 그 형제를 돌이키는 과정'에 대해서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다만 모든 경우마다 그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죄를 지적하면 오히려 불 같이 성을 내거나 너는 얼마나 잘났길래 내 실수를 드러내려고 하고 지적질하냐면서 길길이 날뛸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왠만큼 믿음의 연단을 받은 자라도 잘못을 지적받으면 겉으로는 온화한 표정을 지을지 모르지만 속으로는 불끈하면서 애써 분노를 삭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록 속으로는 욱 할지 몰라도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지적받을때, 하나님 앞에 회개하면서 은혜로 자신을 추스른 후에 결국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인정하며 죄에서 돌이킨다면, 그나마 감사한 일인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아무리 권면해도 도저히 듣지 않고 적반하장의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으로 인해 그 사람 뿐만 아니라 다른 지체들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주거나 교회 공동체 가운데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예수님은 일단 쉽게 포기하지 말고 그 사람이 돌이키도록 권고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여러 절차들을 통해 권면하여, 최종적으로 교회 공동체가 공적으로 엄중하게 그의 죄를 지적하고 책망하는데도 여전히 돌이키지 않는다면 그사람의 믿음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자녀요 주께 속한 자요 교회 공동체에 속한 자라 인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불신자처럼 여기라는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완전히 단전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권징의 실제적 조치인 '출교'입니다.

  물론 어떤 분들은 교회는 늘 사랑으로 한 영혼이라도 품어야 하지 않냐고 질문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죄'라고 하는 것은 결코 혼자 그대로 있지 않습니다. 은밀하게 활동하고, 적극적으로 활동합니다. 그리하여 공동체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주며 더 나아가 교회 공동체 전체를 오염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범죄한 자가 자신의 죄를 시인하고 인정하며 돌이킨다면 교회 공동체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얼마든지 다시 품어주고 용서하며 함께 할 수 있지만 끝까지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어떠한 권고도 거부하며 돌이키지 않는다면 그런 자의 완악함과 거짓에 다른 지체들이 악영향을 받지 않도록 강력한 권징 차원에서 교회 공동체에서 내보내어 단절을 시킨다는 것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교회 공동체가 범죄자를 취급하는 방식은 세상과 다릅니다. 감옥에 가두는 것도 아니고, 때리는 것도 아니고, 사형을 시키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인격적 모욕이나 욕설을 가하는 것도 아닙니다. 한쪽에서는 계속해서 그를 권면하며 그가 죄에서 돌이키도록 애쓰면서 사랑으로 대하지만 끝까지 죄를 회개하지 않고 모든 권면을 거부한다면 그냥 교회 공동체에서 내보내는 것입니다. 모든 관계와 교제를 끊어버리고 세상 사람처럼, 불신자처럼 대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어찌보면 교회의 권징은 너무 싱겁게 보일 수도 있고, 그다지 무서울 만한 것도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교회의 이러한 권징(15-17절)이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실은 굉장히 심각하고 엄중한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내용을 18절부터 20절에서 설명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18절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는 단순히 교회가 자기들 하고 싶은대로 어떠한 결정을 하고 계획을 추진하면 하늘에서도 풀려서 만사형통을 이룬다는 그런 식의 잘못된 해석으로 이어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18절의 의미는 이 땅에서 교회가 범죄한 형제가 끝까지 권고를 거부하며 회개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최종적으로 교회 공동체로부터 출교하는 권징을 행하게 되면, 하나님이 그것을 보시고 하늘에서도 적용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교회의 결정에 하늘의 권세를 위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15절부터 17절에서 이미 말씀하셨던 범죄한 형제에 대한 교회 공동체의 최종적인 권징의 결정이 결코 가변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18절의 이러한 의미는 19절에서도 계속 이어집니다. 이런 차원에서 19절의 "구하면"은 단순히 '기도에 대한 의미'가 아니라 '권징에 대한 의미'인 것입니다.

  참고로 마태복음 18장 19절에 나오는 "두 사람"은 문자적인 의미로서 진짜 딱 두 사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20절에서처럼 '두 세 사람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일 때, 예수님도 함께하신다'는 것은 곧 교회 공동체의 모든 권면을 거부하고, 끝까지 회개치 않고 범죄한 형제에 대해서 교회공동체가 최종적으로 '권징'을 결정한 것이 사람의 판단과 결정을 넘어서 주님의 결정이 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러니 하늘에서도 유효한 결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권징을 결정하는 쪽이나 그 권징의 결정을 받아들여야 하는 범죄한 자에게나 이 권징의 결정은 지극히 중대한 책임과 의무를 지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결정한 권징은 결코 가볍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 공동체도 일부 몇 사람이 모여 자기들의 개인 생각이나 어떤 편리와 유익에 따라 서로 합의하여 대충 의견을 모은 것을 근거로 권징을 결정한다면, 그것은 매우 악한 일이요 주님이 세우신 권징 제도를 더럽히고 악용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식으로 결정한 권징은 주님이 말씀하신 엄중하고 거룩한 권위를 가지는 차원에서 아무런 효력이 없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러한 식으로 교회 공동체가 잘못된 결정으로 권징의 권위를 남용한다면, 범죄한 그 당사자보다 오히려 더욱 악하고 중한 징벌을 받게 될 수도 있을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아울러 주님께서 말씀하신 말씀에 따라 믿음의 간구와 정당한 절차를 따라 이뤄지는 교회 공동체의 다양한 권면에도 불구하고 그 권면을 받아들이지 않고,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 자는 곧 주님의 결정을 반역하는 것과 같은 것이니 교회 공동체에서 아예 권징으로 출교하여 불신자처럼 대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 공동체는 그렇게 권징의 결정으로 교회에서 출교된 그 범죄한 자를 아예 무관심으로 끊어내는 것은 아닙니다. 비룩 출교되었으나 깊은 관심과 사랑으로 그리고 여전히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가 어떻게든 다시금 회개하여 주님 앞에 돌아오기를 소망하며 다시금 회개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성경적 권위를 반영하는 교회 공동체의 권징의 위엄인 것입니다.

  사실 오늘날 교회 공동체 가운데서 '권징'이 너무나 약해졌습니다. 아니 없어져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성도들은 교회의 권징에 대한 무서움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예 인지하지도 않는 이들도 많을 것입니다.

  어떠한 성도가 분명 잘못한 것이 있을 때, 그것을 교회 공동체가 올바로 책망하고, 권징하면 그 성도는 그냥 그 교회를 떠나 다른 교회 공동체로 옮기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분명히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교회가 땅에서 권징을 행하면, 그것이 하늘 문을 열고 닫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이델베르크 교리 문답 83문에서는 천국의 열쇠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거룩한 복음의 설교'가 천국을 여는 도구라면, '교회의 권징'은 천국을 닫는 도구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성도들은 오늘 분문을 통해 과연 오늘날 우리 교회 공동체가 이러한 거룩한 권징의 권위가 바르게 시행되고 있으며, 그 시행의 절차에 믿음으로 순종하고 있는 성도들이 얼마나 있는지를 함께 고민하고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